-교육칼럼-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김옥경
요즘 초, 중등생이 싫어하는 질문 중 하나는 "네 꿈이 무엇이니?"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어요.", "몰라요.”가 제일 많습니다. 그 뒤를 잇는 대답은 아이돌이나 유튜버입니다. 어느 대답 하나 부모의 기대를 채워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죠. 아이가 공룡, 자동차, 슈퍼맨, 우주비행사, 경비 아저씨, 경찰관, 달리기 선수, 가수, 레고 개발자 등이 되고 싶던 시절에 우리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아이의 꿈을 그대로 인정해 주던 그때, 우리는 아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학령기가 되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의 꿈은 현실적인 직업이기를 바라고, 더불어 소득이 높은 분야를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확고한 직업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꿈도 없냐며 빨리 꿈을 가지라고 합니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일 수 있고 그저 꾸기만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구체적인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꿈은 꿈이 아니라고까지 합니다. 중, 고등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부동의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의사’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편치 않습니다. 꿈이 많던 아이들은 왜 꿈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자신의 꿈이 어른들이 바라는 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또, 지금은 단지 꿈을 말하는 것뿐인데 진짜로 이루지 못할 꿈은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어른들의 편견도 한몫합니다. 아이들이 마냥 철부지 같고 말을 안 듣는 것처럼 보여도 아직 어른의 말 한마디가 크게 작용하는 시기입니다. 특히 부모님께는 잘하는 모습만 보이고 싶고,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꿈이 없어서 부모님이 바라는 것을 말할까 하다가도 행여 지키지 못할까 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말해도 "그거 해서 먹고살 수는 있겠냐.", "그 직업을 가지려면 지금처럼 공부하면 안 된다.", "저번에는 이거 한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거냐."등 지지 받지 못할 대답을 들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이들이 먼저 압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아이들이 말한 꿈과 장래희망은 앞으로도 여러 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어릴 적 두 동생과 선생님 놀이를 즐겨 하던 저는 그저 이야기하고 가르치는 게 재미있어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학원이 많지 않던 그때는 당연히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죠. 하지만 커가면서 공부를 보통 잘해선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걸 안 뒤로 선생님이 되는 것과는 다른 공부를 하고, 회사를 다니고 그런 꿈을 가졌던 것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막연히 가졌던 꿈을 이룬 것이죠.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이야기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논술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이룬 것은 아닙니다. 먼저 그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분야의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모아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제 꿈을 향한 첫걸음은 거실 한켠에 놓인 교자상 위에서 출발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또 그것을 자신이 안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든 그 근처에 다다르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어쩌면 ‘성적과 꿈이 꼭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 사항을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으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한 것을 이루지 못해도 좋으니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을 부모님과 편안하게 나눌 수 있게 해 주세요. 명사나 직업으로 끝나는 꿈 말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봐 주세요. 그 태도가 나의 발자국이 되고 그 발자국들이 곧 나의 길이 되어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갈 테니까요. 거창하고 큰 포부가 아니어도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에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 주었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요.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돼요. 동네의 불편한 것을 관리실에 가서 말했어요. 부당한 일을 보고 모른 척했을 때 스스로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친 친구를 부축하다가 지각을 했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요. 아이들이 이런 태도와 마음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된다면,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가지며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사회 구성원이 될 것입니다. 무리하게 애쓰지 않아도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혹시 부모님들은 꿈이 있으신가요? 현재 직업이 있더라도 마음속에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다시 공부를 해서 생산성 있는 일로 이어지는 꿈도 좋고 ‘주 3일은 꼭 운동하기.’, ‘아침에 따뜻한 차 마시기’와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루틴이 되어도 좋겠죠. ‘우리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부모 되기.’처럼 나의 태도를 바꾸는 꿈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초등 논술을 가르치는 직업이 있지만 저의 꿈은 ‘유퀴즈‘*에 출연하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허황되고 제가 봐도 이루어질 꿈이 아닌 것은 압니다만 이런 판타지 같은 꿈도 꿀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꿈이 없는 것보다 어떤 꿈이든 품고 있다면, 지금 내가 겪는 일들 속에서 희망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또한 그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기도 합니다.
이런 저를 보고 고등학생인 제 딸은 “엄마가 무엇으로 유퀴즈에 나갈 건데? 내가 수능 만점 받아서 나가는 게 더 빠르겠네.”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오! 그렇다면, 제발 그렇게만 된다면 유퀴즈 출연을 100번이라도 양보할 텐데요. 아이의 농담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저도 어쩔 수 없는 K-학부모이지만 아이에게 제 꿈을 이야기하고 함께 꿈을 꿔 나가는 동료이고자 합니다. 오늘 저녁엔 아이와 함께 서로의 꿈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요즘 난 이런 꿈을 꿔!! 넌 어때?”
*유퀴즈-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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