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에 덧붙여 나온 설명이다. 62점은 평균에 비하면 높은 점수지만 건강한 자존감 지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줄임말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신이 소중하고 유능한 존재라고 믿는 마음,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고양시킬 수 있을까 검색해 보니 신문기사, 유튜브, 블로그 등의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존감 높이는 방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달랐지만 기본적인 맥락은 같았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 지수에 이를 수 있도록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보자'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실천해 보려고 하니 너무 막막했다. 받아들이는 건 둘째치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구체화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자신이 현존하는 상태(있는)를 변함없이 그 모습(그대로)으로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있는 그대로는커녕 우리는 평생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볼 수조차 없다. 거울을 통해 보거나 타인에게 전해 들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형(原型)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 자신이 변한 건지 그대로인 건지 알 수 없다.
‘있는 그대로’란 말을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본질을 깨닫는 것으로 이해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모습 속엔 내가 원하는 모습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약점과 이기심, 열등감, 질투심, 분노 등 부정적인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삶의 여정을 지나며 각인된 실패와 상처의 기억도 있다. 그걸 그냥 받아들이라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감추고 싶은 면이 더 부각돼 자존감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노력과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세계적인 리더십 컨설턴트인 사이먼 시넥(Simon Sinek)은 "뇌는 부정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키선수들에게 나무를 피하라고 말하면 나무에 집중해 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따라가라고 지시해야 한단다. 장애물을 피하려고 할수록 장애물이 더 커 보인단 뜻이다. 마찬가지로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하다 보면 다른 길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앞에 닥친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면 보이지 않던 길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과 의미는 같지만 뇌가 이해할 수 있는 말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귀엽다’는 말을 추천한다. 매번 다짐하고 다짐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남들에 비해 한참 뒤처져 보이는 모습을 그저 귀엽다고 여겨주시라.
일반적으로 귀엽다고 말하는 대상을 떠올려 보라. 우리는 큰 것보단 작은 것에, 완벽한 것보단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것에 대해 귀엽다고 말한다. 우리가 귀엽다고 느끼는 모든 것 가령, 인형이랄지 캐릭터 같은 것들은 다 아기를 닮았다. 인간은 보통 아기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보면 귀여움을 느낀다고 한다.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라고 하는데,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거나 서툴러 보이는 행동을 하면 '귀엽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편 인간이 아기에게 보이는 태도는 아이러니하다. 아기는 혼자서 먹을 수도 걸을 수도 없다. 남을 배려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콤플렉스 덩어리다. 그런 존재에 대해 인간은 왜 ‘귀엽다’는 긍정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인간의 아기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양육자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하루 24시간 먹고 자고 배설하는 모든 행위와 일어서고 말하는 전 과정을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이때 아기가 사용하는 생존전략이 바로 ‘귀여움’이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은 쾌락중추를 자극해 어른들로부터 양육행동을 이끌어낸다. 미숙한 아기를 낳고 키워야만 하는 인간의 진화적 메커니즘이다.
‘나무를 피하라는 말’ 대신 ‘길을 따라가’라고 해야 하는 것처럼 ‘콤플렉스 가득한 나를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 대신 ‘나는 귀엽다’고 말해보라. 자신의 서툴고 부족한 점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면 한없이 자존감이 떨어지겠지만, ‘귀엽다’고 관점을 전환하는 순간 나 자신은 35만 년에 걸친 진화적 메커니즘으로 돌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좋은 양육자를 만나 한없는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을지라도 성인이 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면을 발견할수록, 실수를 반복할수록 나는 더 귀여워질 뿐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면, 그건 귀엽다는 말 안에 필연적으로 들어있는 빈틈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는 자신의 저서 <투명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일어로 행복(Glück)이란 단어는 빈틈에서 유래한 것이다.
빈틈의 부정성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행복이 없는 사회이다.
시각의 빈틈이 없는 사랑은 포르노이다.
그리고 지식의 빈틈이 없다면 사유는 계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실수, 실패, 약점과 같은 당신의 빈틈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감점요소가 아닌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핵심요소다. 그러니 자신을 마음껏 귀여워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