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불량이라도 찹쌀 도나쓰는 먹고 싶어
이동미
마흔을 기점으로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하는지 실감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 나를 아가씨가 아닌 ‘아줌마’로 불러도 더는 발끈하지 않는다. 헤어라인 쪽을 집중공략하는 새치들을 보며 짜증보단 감탄할 만큼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인생은 나의 적응력을 여전히 시험한다. 이번에 받아들여야 할 시련은 ‘소화불량’이다.
분주한 삶을 살다보니 간편하게 때울 수 있는 밀가루 음식을 애용했다. 그중에서도 빵은 나의 주식이라고 할 만큼 자주 먹었다. 이왕 먹는거 더 맛난 빵을 먹고 싶어 이 동네 저 동네 빵집 순례를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빵을 먹은 후에는 항상 속이 더부룩하고 생목(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입으로 올라오는, 삭지 않은 음식물이나 시큼한 위액)이 올라와 몸을 힘들게 했다. 나이가 들면 소화효소가 줄어 밀가루 음식을 소화하기 힘들다는데, 빵을 제대로 소화 못 하는걸 보면 확실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백세희 작가가 그랬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요즘 빵을 입에 넣기가 두려운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속은 부대껴 죽을 것 같아도 빵은 먹고 싶다고. 이 순간, 오븐에서 갓 부풀어 오른 빵의 노릇한 자태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강렬하게 먹고 싶은 빵은 다름아닌 나의 첫사랑 ‘찹쌀 도나쓰’다.
빵에 진심인 사람들이라면 기가 찰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많고 많은 빵 중에서 고작 찹쌀 도나쓰라니! 하지만 이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어린 시절을 환희로 채워준 ‘최애 간식’이다. 게다가 도넛도 아니고 도나쓰라고?
도넛하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자 주인공들처럼 풀 메이크업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도우넛’이라고 발음해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세련된 영어 발음보다 조금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찹.쌀.도.나.쓰’ 라는 친근한 발음이 더 좋다. 꼭 한 글자씩 또박또박 힘주어 발음해야 한다. 포인트는 역시 ‘쓰’ 발음. 갓 나온 빵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그 충만한 만족감에 씨익 웃던 입모양처럼 입술을 옆으로 길게 펴 주면서 발음해야 느낌이 제대로 산다.
내가 찹쌀 도나쓰를 처음 영접한 곳은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재래시장이다. 그곳에는 작고 허름한 빵집이 있었다. 가게를 밝히는 노란 백열전구 밑에는 항상 사장님이 직접 만든 황금빛 찬란한 빵들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진열돼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나설 때면 나는 이 가게의 찹쌀 도나쓰를 꼭 사 먹어야 했다. 운이 좋아 시간대가 맞으면 찹쌀 도나쓰의 제조 과정을 가게 매대 앞 1열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쫀득하면서 바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찹쌀 도나쓰는 하얀 밀가루 반죽에서 태어난다. 눈에 보이는 것만 곧이곧대로 믿던 꼬마에게 찹쌀 도나쓰의 제조과정은 환상적인 마술쇼 같았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빵집 사장님의 손놀림에서 밀가루 반죽이 찰진 덩어리로, 작은 구슬 반죽으로, 갈색 도나쓰로 착착 변했다. 너무 신기한 나머지, 혹시 속임수가 있진 않을까 하고 나도 모르게 두 눈에 힘을 준 채 밀가루 반죽을 관찰하기도 했다.
도나쓰를 만드는 달인은 자기만의 속도와 강약으로 반죽을 치대고 떼어내고 빚어냈다. 동글동글 앙증맞은 구슬 반죽을 균일한 압력으로 손바닥에 착착 편 후, 팥 앙금을 쏙쏙 넣는 과정에서는 정확한 순서와 박자 그리고 리듬이 느껴졌다. 무대와 악보만 없을 뿐 이것은 빵집 사장님만의 독주회 같았다. 까만 음표 대신 하얀 반죽에 검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팥 앙금을 한가득 품은 구슬반죽들이 그 연주 속에서 알토란같이 완성됐다. 그리고 곧 자글자글 끓는 기름통으로 들어간다. 이때 기름 온도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야 한다. 적정온도에서 튀겨진 도나쓰만이 특유의 갈색 빛을 가질 수 있고 밀가루 풋내도 나지 않지 때문이다.
기름 속으로 퐁퐁 입수한 도나쓰 반죽들은 서서히 금빛에서 진한 갈색빛으로 익어가며 동동 떠오른다. 알맞게 튀겨진 도나쓰들은 이제 대망의 하이라이트, 설탕 옷을 입는다. 이 때 사장님은 넓은 은색 쟁반에 설탕을 펼쳐 그 위에 도나쓰들을 앞뒤 좌우로 여러 번 데굴데굴 굴리셨다. 반짝이는 하얀 설탕 망토를 두르는 찹쌀 도나쓰는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맛깔나게 아름다웠다.
“오래 기다렸지? 자, 여기 가장 맛있는 놈으로 골라줄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고소한 냄새, 그리고 말캉말캉한 느낌의 찹쌀 도나쓰가 두 손에 들어왔을 때의 감격이란! 입 천장이 데지 않게 호호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문 찹쌀 도나쓰의 맛은 까칠까칠해도 순식간에 사르르 녹아드는 설탕의 달콤함으로 먹는 이를 절로 웃음짓게 만든다. 곧이어 팥앙금이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지면서 동공이 커지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밀당하듯 쭈욱 늘린 찹쌀 도나쓰의 겉면을 오물오물 입 속으로 당겨 넣는 재미에 빠지다 보면 입 주변에 설탕 가루가 묻는 줄도 모르고 먹게 된다. 자신이 만든 맛있는 걸작을 행복하게 먹는 어린 단골손님에게 사장님은 종종 시원한 우유 한 잔을 서비스로 내주곤 하셨다. 찹쌀 도나쓰의 달큰한 앙금과 시원한 우유가 어우러졌을 때의 맛, 그것은 속이 더부룩해 죽겠지만 빵에 대한 식욕본능을 일깨워 줄 만큼 환상적인 것이었다.
입 주변에 설탕 가루를 묻히며 찹쌀 도나쓰를 먹던 아이는 세월이 지나 소화불량으로 빵과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중년의 아줌마가 됐다. 현재 소화능력과 건강상태를 고려해 이제는 예전만큼 빵을 애정할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맛볼 기회가 허락된다면 그 때의 찹쌀 도나쓰를 꼭 먹어보고 싶다. 깔끔한 포장지에 싸인 채 차갑게 식은 프랜차이즈의 찹쌀 도너츠가 아닌, 만든 사람의 장인정신과 푸근한 인심을 품은 따근따끈한 찹쌀 도나쓰를. 아!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