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비극 뒤에 가려진 책임
박세리
아직도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
올해 2월 기사 한 꼭지가 사회면을 도배했다. 한 미혼모가 분윳값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섰다가 홀로 남겨진 8개월 된 아이가 쿠션에 질식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사건 발생일은 지난해 5월, 재판부가 9개월 만인 올해 2월 판결 내리며 기사화됐다. 재판부는 아동학대치사에 대해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했지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형 집행을 유예했다. 이 비극적 사건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해석해서다.
하지만 ‘분윳값’, ‘성매매’, 그리고 ‘영아 사망’이란 단어가 기사 제목에 나란히 앉으며 자극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에 익명에 기댄 몇몇 키보드 워리어는 기사보다 더 자극적인 댓글을 달았다. 그중 소화하기 어려운 악성 댓글도 있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성매매하느라 애를 죽였다’라는 댓글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은 것과 성매매는 사실이지만, 댓글에는 진실을 왜곡하는 악의적 해석이 들어있었다. ‘~하면서, ~하느라 ~을/를 죽였다’는 식의 표현에는 ‘고의로 나랏돈을 편취하고, 아이보다 성매매가 우선’이라는 편협한 해석과 근거 없는 비난이 들어있다.
비극의 뿌리를 외면하고 타인의 고통에 초연한 ‘악마의 손가락’은 어쩜 이리도 재해석에 뛰어난지 모르겠다. 미혼모인 A 씨는 과거 임신 과정에서 낙태를 권하는 가족과 갈등 끝에 혼자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사건 발생 전까지 건강했다. 실제 A 씨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 따르면 안타깝게 사망한 아이는 사망 당시 학대 정황을 찾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건강하고 양호한 상태였다. A 씨는 가족과 단절하면서까지 아이를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기에 앞서 그를 ‘어떤 일을 해서라도 아이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엄마’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왜 어떤 이들은 타자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수고보다 비난이라는 편리한 방법을 선호할까. A 씨 사건과 댓글을 본 후부터 내내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눈, 물>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그림책으로 각박해진 시대의 마음을 녹여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 <눈, 물>의 온기
어느 겨울 도시와 떨어진 외딴곳에서 한 여자가 홀로 ‘눈아이’를 낳는다. 여자는 우는 아이를 찬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자신의 체온에 녹아버리는 눈아이를 품에 둘 수 없었다. 여자는 밖에 쌓인 눈을 한 아름 들고 와 아이와 자신 사이에 벽을 쌓고 벽 너머에서 아이를 돌본다. 눈으로 인형을 만들어 주고 다정한 자장가로 아이 곁을 지킨다. 초록이 몰려오기 전까지.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봄으로 바뀐다. 조금씩 녹는 눈아이. 아이는 괴로운 울음을 터뜨린다. 여자는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초록들을 온몸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때 ‘언제나 겨울’이라는 제품을 선착순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전단지가 보였다. 그곳에 눈아이를 넣으면 곧 들이닥칠 한여름에도 눈아이는 안전할 터였다. 여자는 문틈으로 밀려드는 온기를 막으며 말한다.
“금방 돌아올게”
'언제나 겨울'이라는 것을 찾아 도시를 향해 맨발로 내달리는 여자. 달리고 달려 상점에 도착하지만, 행사는 끝나버렸다. 가진 거라고는 걸친 옷 한 벌과 몸뿐인 여자는 절망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여자는 전단지 돌리기, 우유 배달, 행사장 인형 탈 도우미 등 일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다. 언제나 겨울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이 여름이 성큼 가까워졌다.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여름이 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는 상점 유리창을 깨고 '언제나 겨울'을 훔쳐 집을 향해 달린다. 마침내 여자가 '언제나 겨울'을 들고 돌아왔을 때, 방에는 작은 물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그림책 속 여자는 어딘가 A 씨를 닮았다. 그림책과 A 씨 사건은 비극도 불평등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협소한 재정지원만으로 양육환경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 것처럼, 변화에는 다양한 층위의 관찰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에 가려진 사람과 비통함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연말,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메일에 담고 싶었지만, 이 사건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한해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지면을 빌려 공동체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두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A 씨 사건을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단지 범행 결과를 놓고서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중한 결과(영아 사망)의 발생에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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