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이름을 가진 독한 년
박세리
공주님, 베짱이, 수도꼭지, 요술공주 세리, 투덜이(스머프), 스윗곰탱, 장화 신은 고양이 푸스, 유리멘탈, 걱정 인형, 일 벌이는 여자, 그리고 독한 년.
살면서 들었던 나의 별칭이자 애칭들이다. 부모님은 집안일에 도통 관심 없는 나를 공주님이나 베짱이라고 부르셨다. 뺀질뺀질 하기로는 자식 중에 원탑이었으니 다 크도록 설거지 한번 제대로 한 적 없고 김장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지키는 건 늘 여동생 몫이었다. 그렇다 보니 여동생 손맛은 엄마 못지않고 나는 근근하게 먹고 사는 게 당연지사겠다. 살림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오로지 노는 데 썼던 철없음을 누굴 탓하랴. 베짱이란 별명이 찰떡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요즘 부모님은 두 개의 별칭을 한꺼번에 부르신다. 친정에 가면 평소보다 더 많이 자고 덜 씻는 탓에 ‘베짱이 공주님’이 된다. 게다가 부엌에 서서 뭔가 하려는 폼이 엄마와 여동생 눈에는 영 어설퍼 보이는지 “저리 가~”라 말하기 일쑤라 뭘 해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아무리 살림에 재주가 없고 설렁설렁하게 했어도 주부 경력 10년이 넘었으니 칼질 정도는 자신 있건만, 그마저도 엄마와 여동생 실력에 비해 한참 모자라 두 사람 뒤꽁무니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다 일찌감치 식탁에 자리 잡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베짱이 공주님~?”이라 부르는 아빠 목소리가 들려온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는 베짱이라는 별칭이 너무 싫어 바락바락 짜증을 내곤 했는데 이제는 아빠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부르시면 훈훈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안에는 가족의 배려와 사랑, 염려,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한결같은 내 자리가 존재한다.
징글징글하게 날 놀려댔던 소꿉친구들이 붙여준 별칭도 있다. ‘툭’하고 건들면 울어대던 탓에 붙여진 ‘수도꼭지’, 만화영화 주인공과 동명이라 붙여진 ‘요술공주 세리’, 싫은 건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싫어!”라고 말해서 갖게 된 ‘투덜이(스머프)’, 생긴 것 같지 않게 곰 같은 구석이 있다며 듣게 된 스윗곰탱 등도 그 녀석들 작품이다.
같이 사는 남(의)편은 나를 ‘일 벌이는 여자’라고 말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성과로 이어내기 위해 동시에 여러 일을 병행하니 한 길만 걷는 남편 입장에서는 좀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벌이는 여자가 맞다. 그렇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아등바등 사는 모습을 두고 절친들은 종종 ‘독한 년’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나름 큰 수술을 했는데 수술 3일 차에 벌떡 일어나 걷고, 6일 차에 퇴원해 바로 일상에 복귀하는 행태를 보여 한 친구에게 또 독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감은 세도 "똑 부러지게 자기가 할 건 하지!"라는 말로 들려 썩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게 부여된 책임도 다하며 살아남기 위해 내 삶에 독기는 필수였으니 인정받은 셈이다.
놀림, 미움, 호기심, 애정, 관심, 사랑 같은 다양한 감정에서 비롯된 ‘남이 바라보는 나’. 거기엔 그들이 겪고 이해했던 나의 조각이 담겨 있다. 그들이 저마다 나를 다르게 부를 때면 꼭 그런 나를 원하는 것만 같아서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나는, 가족이 보는 것처럼 모든 상황에 베짱이는 아니다. 일터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 촘촘한 계획을 짜고 철저하게 실행한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제일 싫은 벌레가 대충일까. 그래서 일머리도 없는데 불성실한 사람은 견디기가 어렵다. 또 “내가 원래 그런 걸 못해.”라고 미리 능력 부족이라는 연막을 치고 본인이 할 일을 자연스레 떠넘기는 사람은 더 싫다. “내가 원래 잘 못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 볼게. 좀 가르쳐 줘.”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나 역시 나이 들어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빨간 립스틱 하나면 지하여장군처럼 무시무시해지는 인상을 가졌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눈물이 많다. 초이성형처럼 굴면서도 도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협의’를 행하는 ‘선협물 판타지 중드’를 즐긴다. 보법으로 나는 듯 걷고, 사람 하나쯤은 거뜬히 들쳐 메고 검선을 날리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노는 시간은 더 좋아한다. 그래서 정서적인 에너지 8할은 혼자 있는 시간에 채운다.
관계주의적 성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배제하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나도 타인이 부르는 별칭의 총합으로 자신에 대해 인지하고, 살면서 알게된 ‘진짜 본연의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를 그 위에 쌓아 올렸다. 별칭의 총합으로 나를 표현하면 ‘열 개의 이름을 가진 독한 년’ 정도 될까. 그 안에 일에서만큼은 완벽하고 싶은 열망과 눈물 많은 의외의 모습, 또 중드 마니아인 점까지 덧붙인다면 비로소 온전한 나와 가까워진다.
가끔은 한껏 투정 부리며 그들이 부르는 대로만 살고 싶기도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려 노력한다. 누구에게는 베짱이 공주님, 누구에게는 독한 년, 누구에게는 투덜이 그리고 판타지가 실재한다고 믿는 자주 웃고 잘 우는 진짜 나를 받아들이며. 한참 뒤엔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노쇠한 몸으로 복지관과 평생 교육관을 오가며 여전히 배우고, 중드를 볼 때면 슬며시 손바닥으로 장풍을 날리는 파파 할머니. 우훗, 이런 러블리한 독한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