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임 : 만우(滿友)]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며,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에 눈물을 지으며, 수술 후 통증을 이겨가며, 새생명이 움트는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면서도 왜 기어코 쓰려는 걸까.
만우는 삶의 고단함과 갈등을 견디며 정체성의 위기를 글쓰기로 풀어가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가 아닌 옥경, 세리, 동미, 은희라는 이름으로 시즌2, 24편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준 순간들을 잘 가꾸어 당신께 보냅니다. 만우의 글이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당신이 품은 고유의 색과 향기가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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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는 음식, 여행, 일상철학, 교육 분야의 칼럼 네 편을 보냅니다. 음식에 더해지는 삶의 이야기, 엄선한 국내 여행지, 삶 속에 녹아든 철학, 그리고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관한 팁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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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가을에만 허락된 시크릿 플레이스
이동미
1년 365일 중 딱 한 번 허락된 날이라면 무엇이 떠오를까? 누군가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기념일을, 또 다른 누군가는 그동안 사고 싶었던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득템 할 수 있는 세일 찬스를 생각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날이 아니기에 더욱 각별한 하루, 이 의미와 기회가 가을 여행지에도 존재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가을에만 우리에게 곁을 내주는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계절 중 유일하게 가을에만 외부인의 발길을 허락하는 곳, 그곳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 Place 1. 황금빛 황홀경, 홍천 은행나무 숲
은행나무는 가을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목이다. 나무 자체에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살충 성분이 있어 병충해에 강한 이 나무는 오랫동안 도시의 가로수로 사랑받아 왔다. 그래서일까? 가을을 노래할 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은행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을 떠올린다. 9월의 문턱을 갓 넘은 요즘은 은행나무의 샛노란 빛깔을 보기 어렵지만, 계절이 깊어가면서 그 본연의 색깔이 만들어낸 절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은행나무를 조금 특별한 사연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홍천 은행나무 숲’이다.
홍천 은행나무 숲은 사람들에게 서서히 입소문을 탄 강원도의 숨은 보물이다. 약 4만 제곱미터(약 1만 2천 평) 땅에 5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심어진 2천여 그루의 은행나무들은 중학교 때 노란색 반티를 입고 펼친 가을 운동회의 매스게임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숲의 규모도 놀랍지만 이 드넓은 땅에 가지런히 심어진 은행나무들이 한 사람의 땀과 사랑으로 가꾸어졌다고 하니 새삼 주변 경치를 다시 둘러보게 된다. 과연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숲에 은행나무를 심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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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춘(81)씨는 아픈 아내의 요양을 위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1986년 홍천 땅에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의 사유지에 아내의 쾌유를 바라며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작은 묘목들은 훌쩍 자라 가을마다 이 숲을 황금빛 황홀경으로 물들이고 있다. 유씨는 이곳을 2010년에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였고 차츰 홍천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만들어 낸 홍천 은행나무 숲은 그래서 더 특별하고 아름답다. 혹여 지독한 은행 열매의 냄새가 걱정이라면 그것은 기우일 뿐임을 밝혀둔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지만 홍천 은행나무 숲은 수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가을의 정취를 느끼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의 열기가 사그라든 가을, 홍천 은행나무 숲에서 산책과 함께 나만의 인생사진을 남겨보고 싶다면 숲이 개방되는 오전 9시~11시 사이에 방문하길 추천한다.
#Place 2. 왕이 잠든 숲의 비밀- 광릉숲 축제
이번에는 올해로 19번째 맞는 ‘광릉숲 축제’로 장소를 옮겨보자. 광릉숲 축제는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 보전구역에서 열리는 친환경 숲 축제로 작년에 이어 2024년 경기관광축제(도내 경쟁력 있는 축제를 선정해 우수 콘텐츠로 육성하는 사업)에 선정되었다. 축제 기간 숲길을 걷는 '광릉숲뚜벅이'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먹거리, 플리마켓이 함께 열려 오감을 만족시켜 준다. 또한 숲속에서 요가를 체험하는 이색적인 시간도 마련돼 광릉숲을 더 새롭게 즐길 수 있다.
광릉숲은 경기 남양주와 포천, 그리고 의정부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 산림의 보고다. 총면적 2천238㏊ 가운데 소리봉(해발 536.8m)을 중심으로 약 1천200㏊에 걸쳐 천연림이 분포되어 있다. 본래 조선시대 왕의 사냥터였지만 세조의 왕릉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왕이 잠든 숲’으로 불리기도 한다. 왕조의 사냥터였던 만큼 생태계 보존이 잘 되어 다양한 생물군이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한국의 자연 생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광릉숲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존재와 보존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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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 축제는 평소 일반인의 발길이 허락되지 않은 구간을 축제 기간동안 개방한다. 조계종 봉선사 주차장과 광릉숲 비공개 지역 7km 구간을 밟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탐방 구간은 큰 턱이나 오르막길이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산책할 수 있으며, 대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짙푸른 녹음에 휩싸인 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해 왔을 광릉숲은 과연 어떤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줄까?
숲을 보다 더 인상적으로 만나려면 탐방로 중간중간 마련된 폭신한 빈백을 이용하길 추천한다. 숲을 거닐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빈백에 앉거나 누워 광릉숲을 우러러 보자. 앞만 보고 달려가기 바빴던 우리의 시선이 위로 향하는 순간, 다양한 초록빛깔 나무들과 잔잔한 바람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피톤치드 가득한 숲의 숨결이 우리 몸과 마음에 푸르게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한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은 광릉숲 축제의 입구는 봉선사 쪽이며 출구는 광릉수목원 방향이라는 점이다. 출구로는 입장이 불가하니 동선에 유의하자. 2024년 광릉숲 축제는 오는 9월 28일과 29일에 개최된다.
처서를 기점으로 여름이 마치 마법처럼 가을로 바뀌었다. 연일 열대야 기록을 갈아치웠던 무더운 계절 속에 지치고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충만하게 채울 차례다. 가을에만 허락된 시크릿 플레이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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