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코트
김옥경
내가 중학교 2학년 가을 무렵 엄마는 집을 나갔다. 동복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었던 것 같다. 어떤 말도 없이 젖은 눈으로 나를 스치듯 바라보던 엄마 손에는 작은 짐 가방이 들려 있었다.
몇 달간 부모님은 지겹게 싸우며 어린 나와 동생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얼마간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지속되더니 결국 엄마는 집을 나갔다. 엄마의 뒷모습조차 쳐다볼 수 없었던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다는 게 큰일 날 일인지, 슬픈 일인지 잘 몰랐다. 잠깐 나갔다가 내일 오겠지. 얼떨떨하고 무덤덤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난생처음 나에게 엄마가 없다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어쩌면, 차라리 잘 됐다. 당분간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을 테니까.’
다음 날 오후에 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니는 앞치마에 머릿수건까지 하고 우리 삼 남매를 건사했다. 머리에 두른 삼각형 모양의 두건에선 마치 독립투사 같은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네가 없어도 애들은 내가 잘 키우겠다. 뭐 이런 느낌?! 할머니는 그렇게 비장한 모습을 하고 계속 엄마 이야기를 했다.
“아이고 얄궂다. 이게 뭔 일이고. 애들은 우짜라고 이러고 어디로 간기가.”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나의 최선은 엄마를 찾는 일이 아니라 우리 집에는 아무 일 없다는 태연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없다고 울 나이는 아니었지만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많이 어렸다. 엄마의 연락처는 몰랐고 아빠한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 보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스스로 견딜만하다고 믿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들어오는 아빠는 나의 스케줄을 알 리가 없었고, 내게 필요한 것들은 스스로 챙겨야 했다. 이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빠에게 ‘아빠 때문에 이지경이 된 것 아닌가요.’라는 눈빛으로 굉장히 떳떳하게 필요한 돈을 달라고 했다. 준비물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며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으려 애썼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여느 때와 같이 내 자리를 잘 지키며 밝은 척했고, 하교 후 교문을 나서면서부터는 땅만 보고 걸으며 불쌍한 아이 코스프레를 했다. 사실 코스프레가 아니었지. 저절로 고개가 떨어지곤 했으니까. '나 좀 봐요. 엄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이렇게 의기소침하고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고요.' 주문을 외면서 어디선가 엄마가 나를 지켜보기를 바랐다.
매일 하던 주문이 통한 걸까. 그렇게 몇 주 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교문 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가 학교 앞으로 진짜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를 본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지만, 왜인지 나는 속으로 절대로 울지 말자고 생각했다. 엄마는 자주색에 가까운 진한 보라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목에 있는 연보라색 털 장식 때문인지 반가움보다는 어색함에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못 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처음 보는 그 코트 때문이었을까. 그저 낯선 엄마 모습에 지금 우리를 아무도 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는 집 나간 엄마가 학교 앞으로 찾아와 애잔하게 잘 지냈냐고 물으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비싼 고기를 사주고 용돈 두둑이 준 다음, 또 온다면서 헤어지던데. 훗, 이게 뭐야. 드라마가 아니었네. 그때 고깃집으로 들어가서 무슨 고기를 주문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주머니 속의 지폐를 계속 만지작거렸던 것은 아직도 또렷하다. 내어 주지 않는 손을 끝까지 잡고 있는 심정이었달까. 그날 학교 앞에 서있던 보라색 코트를 입은 사람이 진짜 우리 엄마였을까. 아니면 나의 간절한 주문이 데려다준 허깨비였을까.
몇 달 뒤, 늦은 밤 엄마는 아빠와 함께 돌아왔다. 그 보라색 코트를 입고서. 신기루를 본 것처럼 앞이 부옇게 흐렸다. 나는 아무 말도 않은 채 작은 구석방으로 들어와 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밤새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엔 노란 계란말이와 된장찌개, 매콤한 고구마 줄기볶음이 어우러진 밥상이 차려졌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우리 집 냄새였다. 하지만 엄마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화해를 한 건가. 이제 안 싸울 건가.'
어른의 삶은 위태로운 거짓말 투성이었다. 다음 말을 지어내기 무섭게 또 다음 말을 지어내야 했으니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뜻 모를 슬픔은 이때부터 나를 엷게 쳐다본다. 그럴 땐 뾰족하게 깎은 연필이 불편해 스케치북에 사각사각 빗금을 그려가며 뭉툭하게 만들 듯이,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불안이 불편해서 가만히 좀 있으라고 너만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씩 밀어 넣었다.
이제는 내가 거짓말투성이인 어른이 되었다. 차라리 무뎌지고 무뎌져 닳아 없어져 버리면 좋으련만, 불안을 가득 넣어 가슴 한구석이 불룩해진 채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어른의 삶은 아는 길에서도 미아가 될 만큼 복잡하고 미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건드릴세라, 터질세라. 불룩해진 가슴 한편을 들키지 않으려 노심초사하고 대부분 침묵한다.
나도 20년간의 결혼 생활 속에서 한 백 벌쯤 보라색 코트를 사고 싶었을 거다.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긴 선녀가 아이 셋을 낳은 뒤 날개옷을 입고 자신의 나라로 간 것처럼 보라색 코트를 입고 하늘을 날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여의치 못한 상황에 그 마음들을 다독거리며 사각사각 뭉툭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다시 돌아온 그날 밤을 떠올렸다.
요즘 같은 계절엔 엄마가 자주 보고 싶어진다. 한동안 엄마의 장롱 깊숙이 걸려 있던 낯설고 이질적인 보라색 코트. 그것은 아마도 지금 내 나이였을 그때의 엄마를 지금까지 내버티게 해준, 아주 잠깐이라도 진짜 자신과 마주한 용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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