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인형의 생존법
박세리
지난해 이맘때 뜨개를 시작했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그저 찬 바람이 불었고 털목도리가 따뜻해 보였다. 털목도리를 두르면 잠이 올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불면증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잠이 부족하면 온몸의 감각이 느려진다. 몽롱한 날들이 길어지니 삶에 나를 아무렇게나 위탁하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밤마저 나에게는 불공평했다. 아이, 남편, 시댁, 친정, 일, 여러 이해관계 등등 온갖 상념들에 허덕이며 점점 까칠한 걱정 인형으로 변해갔고 잠들어 있는 시간은 하루 세 시간이 채 되지 못했다.
불면증 뒤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버티고 있었다. 불안은 걱정과 두려움이 주 감정이다. 통제력에서 안정감을 찾는 나는 불확실한 모든 상황에 불안을 느꼈다. 불안은 한밤 홀로 깨어있는 시간에 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평소 들리지도 않는 심장 박동이 크게 들리고, 눈꺼풀 떨림으로 시작해 손발 끝이 뻣뻣해지는 증상으로 나타나 겁을 준다. 그 감각은 불쾌였고 한동안 벗어나려고 다방면으로 애썼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숨 쉴 틈 없는 빡빡한 일정으로 불안을 덮어 보려 했으나 그 녀석은 매우 영특해 얄팍한 속임수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분주한 일상의 끝, 불안은 어김없이 찾아와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보란 듯 공허라는 친구까지 데리고 와 내 안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조소를 날린다. 낮보다 감성적 에너지가 증폭하는 그 시간은 불리하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적막한 밤. 나약한 마음으로 홀로 맞서야 하는 그때를 나는 ‘그림자 시간’이라 불렀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퀼트, 그림 같은 잡기들은 그 시간을 버틴 흔적들이다. 이왕이면 글쓰기에 오롯이 집중하면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더 어려웠다.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쌓이고 삶의 질은 점점 떨어졌다.
그러다 뜨개를 시작하고 안정감을 맛봤다. 보드라운 털실이 손에 사락- 감기면 뻣뻣해졌던 손과 마음의 근육들이 조금씩 풀어졌다. 조물조물 털실을 만지며 온기를 느꼈다. 무엇보다 손뜨개질은 초보에겐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으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편물기를 이용하지 않는 만큼 실을 대바늘에 걸고 하나하나 엮어가며 모든 코에 정성을 쏟는다. 코 하나를 빠뜨리고 한참을 달리다 뒤늦게 발견하면, 숭숭한 구멍이 나 있다. 그땐 망설이지 말고 지나온 자리를 모두 풀어 빠뜨린 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첫 작품은 넝마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모양새를 갖춰 봐 줄 만하다. 실뭉치가 점점 작아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성취감도 느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