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임 : 만우(滿友)]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며,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에 눈물을 지으며, 수술 후 통증을 이겨가며, 새생명이 움트는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면서도 왜 기어코 쓰려는 걸까.
만우는 삶의 고단함과 갈등을 견디며 정체성의 위기를 글쓰기로 풀어가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가 아닌 옥경, 세리, 동미, 은희라는 이름으로 시즌2, 24편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준 순간들을 잘 가꾸어 당신께 보냅니다. 만우의 글이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당신이 품은 고유의 색과 향기가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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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음식, 여행, 인문, 교육 분야의 칼럼 네 편을 보냅니다. 음식에 더해지는 삶의 이야기, 엄선한 국내 여행지, 삶 속에 녹아든 철학, 그리고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관한 팁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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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칼럼-
허기의 소방수, 맛의 권력자
박세리
우리에겐 김밥에 대한 공통된 정서가 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소풍 도시락’이라고 하면 으레 김밥을 먹던 기억이 있지 않던가. 돗자리 위에 싸 온 도시락을 펼쳐 놓으면 어슷비슷해 보여도 재료와 손맛에 따라 맛이 달라 서로 바꾸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집 김밥은 밥에 간이 센 편이라 속 재료가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집은 속 재료가 단출해도 간이 잘 맞고 밥과 재료의 어울림이 좋아 가장 먼저 없어지기도 했다. 옆구리 터진 김밥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먹으며 그저 학교 밖 나들이가 좋아 티 없이 맑게 웃던 추억. 김밥은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하는 정겨운 먹거리다.
소풍 때마다 엄마가 싸주던 김밥은 내가 엄마가 되고부터 할 줄 아는 음식에 편입되었다. 솜씨가 탁월하지 않아도 그럴싸한 맛을 낼 수 있어 휴일에 한 끼 식사로 때론 간식으로 종종 만들게 된다. 요즘 한창 성장기에 들어선 아이는 뱃구레가 늘어 끼니 사이에도 포만감 가득한 간식을 원한다. 아이의 참을성이라 봐야 10여 분 남짓일 터. 이런 급박한 상황에도 밥과 김만 있으면 냉장고 안 식재료로 급한 허기를 달랠 수 있다.
배고파하는 아이를 위해 얼마 전 선물로 들어온 남해 돌김을 꺼내고 냉장고에 있던 묵은 무김치를 내어 씻었다. 밥은 맛소금으로 밑간하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휘릭휘릭 섞어둔다. 보관했다 먹어야 한다면 소금, 설탕, 식초를 1:1:1로 단촛물을 만들어 넣기도 하겠지만, 바로 먹거나 요즘처럼 추울 땐 생략한다. 달걀은 소금과 설탕을 약간 넣어 도톰한 지단으로 부치는데, 썰었을 때 단무지 크기 정도는 되어야 묵은 무와 맛이 조화롭게 어울리니 달걀말이처럼 돌돌 말아 부피감 있게 만든다. 미리 씻어둔 무는 길게 썰어 기름에 살짝 볶으면 준비 완료. 김에 밥을 고르게 펴고 묵은 무 지짐과 달큰하게 만든 도톰한 달걀지단을 넣고 돌돌 말면 완성이다. 미니멀하지만, 허기의 소방수로 이만한 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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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된다면 당근이나 시금치, 우엉, 햄, 볶은 멸치 등등 입맛에 따라 재료를 추가해도 좋다. 햄 대신 볶은 유부를 사용하면 담백한 고기 맛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유부의 자박자박한 물기만 짜내 넣으면 달콤함과 짭조름함이 더해져 꽤 매력적인 맛을 선사한다. 이때 김은 생김을 사용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만들 때 옆구리가 터지는 불상사도 방지할 수 있어서다. 밥의 밑간도 좀 더 신경 써 소금과 매실액을 넣어 골고루 배합해 여러 가지 맛의 조화에 도전해 볼 수도 있다. 그마저도 귀찮거나 조미료가 마땅치 않을 땐 마요네즈를 약간 넣어 간을 맞추는 방법도 있다. 설탕, 식초, 소금, 달걀 등이 들어가 있어 과하게만 넣지 않는다면 부족한 간과 고소함을 다 잡을 수 있는 일종의 필살 레시피다. 여기에 국물 하나 곁들인다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이처럼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김밥은 우리 삶 속 깊이 자리한 맛의 권력자라 칭할만하지 않은가.
최근에는 속 재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김밥 가게도 등장해 한식도 얼마든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김밥이 K-푸드 대표 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려와 김밥 애호가로서 매우 뿌듯하다. 개개인의 기호를 반영하고 휴대의 간편성, 맛과 영양, 색의 조화까지 두루 갖춰 심미적으로도 훌륭한 이런 음식을 누가 마다할까.
종종걸음으로 찾아 들어간 분식점에서 각자 메뉴를 주문하고도 한 번쯤 “김밥 한 줄 시킬까?”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라면과 찰떡궁합이요, 떡볶이·우동과도 어울리는 김밥. 오늘 마땅한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허기의 소방수, 맛의 권력자인 김밥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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