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임 : 만우(滿友)]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며,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에 눈물을 지으며, 수술 후 통증을 이겨가며, 새생명이 움트는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면서도 왜 기어코 쓰려는 걸까.
만우는 삶의 고단함과 갈등을 견디며 정체성의 위기를 글쓰기로 풀어가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가 아닌 옥경, 세리, 동미, 은희라는 이름으로 시즌2, 24편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준 순간들을 잘 가꾸어 당신께 보냅니다. 만우의 글이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당신이 품은 고유의 색과 향기가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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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음식, 여행, 인문, 교육 분야의 칼럼 네 편을 보냅니다. 음식에 더해지는 삶의 이야기, 엄선한 국내 여행지, 삶 속에 녹아든 철학, 그리고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관한 팁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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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서
이동미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숨 고르기’를 한다. 정신없이 살아온 한 해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다가올 새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어낸다. 개인적으로 굴곡진 시간이 많았던 올 한 해, 턱까지 차오른 숨을 조금씩 내쉬면서 마지막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 보았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침대에 눕는 순간, 문득 순간 이동하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바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의 주인공 '혜원의 집'이었다.
군위에서 만나는 작은 쉼표
혜원은 고단한 서울살이를 견디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뜻하는 것과 달랐고 그녀는 도망치듯 고향 시골집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3~4일 정도 머물 계획이었지만 지내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고 만다. 겨울에서 시작한 영화의 장면이 다시 겨울로 돌아오기까지, 혜원은 손수 밭을 가꾸고 땀을 흘리며 열매를 수확한다. 그리고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들을 추억하며 직접 그 음식을 해 먹는다. 치열하게 경쟁하듯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고향집에서 그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단순한 집이 아닌 주인공에게 회복과 치유의 공간이자 안식처로 등장하는 이 '혜원의 집'을 대구시 군위군 우보면 미성 5리에 영화 세트장에서 만날 수 있다.
2023년 7월 1일부터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행정구역이 변경된 군위. 이곳은 이미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촬영지였던 ‘화본역’을 비롯해서 ‘삼국유사테마파크’나 운무가 아름다운 ‘화산마을’ 같은 여행지로 입소문을 탄 곳이다. 특히 군위가 가진 유려한 자연 풍경과 관광 포인트는 대구 중심지와 가까운 남동쪽에 위치해 경상 및 대구권역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사계절의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제작 포인트였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였던 까닭일까. 군위가 품고 있는 자연 풍경에는 그저 평범한 시골 정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왠지 아쉬운 운치와 낭만이 있다. 워낙 고즈넉하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혜원의 집 주변의 나무와 풀, 햇빛 한 줄기와 바람 소리는 마치 영화 속에 등장했던 소품처럼 각별하게 다가와 외지 방문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혜원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인물 중심의 인증 사진보다 자연스럽게 주변 경관을 담은 풍경 사진을 더 많이 찍은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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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의 집, 그 주방에 서서
대문 없는 마당을 가로질러 혜원의 집 본채에 들어서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진갈색 나무 마루와 아늑한 거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레트로 스타일의 주방. 무려 70년이 된 목조건물인 '혜원의 집'은 천장의 서까래가 지붕을 받치고 있어 그 모양새가 더욱 멋스럽다. 전기와 수도가 끊어진 상태로 세트장의 외형만 갖추고 있지만, 지금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보았던 장작과 장독대를 비롯해 혜원이 탔던 자전거까지 직접 볼 수 있으니 더욱 생동감이 넘칠 수밖에.
혜원의 집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은 역시 '주방'이다. 타일로 깔끔하게 정리된 이곳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음식을 생각해 보자. 혹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 나눠 먹고 싶은 음식도 좋다. 직접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누군가와 나누어 먹는 상상만으로 우리는 혜원처럼 잊고 있던 삶의 의미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 등장한 음식 가운데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메뉴는 다름 아닌 배춧국이다. 집에 내려온 첫날,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채우기 위해 눈 덮인 텃밭으로 향한 혜원은 맨손으로 잔설을 해쳐가며 뽑아온 배추 밑동과 양파로 배춧국을 끓인다. 국물까지 야무지게 먹는 주연 배우의 연기는 보기만 해도 식욕을 돋울 만큼 명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타지에서 꽁꽁 얼어붙은 배추 밑동같이 살고 있던 주인공이 배춧국을 먹고 비로소 미소 지으며 기운을 차리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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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사박. 혜원이 고향집으로 돌아오던 첫날, 그녀가 밟았던 눈길 위의 발걸음 소리를 떠올려 본다. 잡초처럼 끝없이 자라는 불안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앞에서 답답하고 어지러웠던 시간을 보낸 당신도 어쩌면 또 한 명의 혜원일지도 모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반복되는 일상을 이어 나가야 하는 나와 당신이지만, 이곳 혜원의 집에서 잠시 머무르며 우리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라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배춧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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