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당신을 초대하고 싶은 단 하나의 세계
박세리
퇴장을 거부하던 여름 더위도 물러나고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분다. 9월, 등불 아래 책 읽기 좋다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그런데 2021년 기준 세계 최하위 독서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니 등화가친이란 말이 무색하다. 같은 해 실제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47.5%였다. 성인 2명 중 1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뜻이자 당신 옆에 책과 담쌓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책과 독서의 가치를 옹호하는 한 사람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독서의 즐거움과 그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한 글들은 이미 차고 넘쳐 보태지 않기로 했다. 그저 고단한 일상에 책의 자리를 마련해 삶을 좀 더 다감하게 보살필 수 있었던 나의 이야기로 당신을 책의 세계로 초대하려 한다.
내가 널 잊어도
책을 늘 가까이하던 사람도 책과 멀어질 때가 있다. 생계가 삶을 짓누르면 ‘책 따위가 뭔가’ 싶어진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
올 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을 나누다 들은 말이다. 툭, 한마디 내뱉고는 먼 곳을 응시하는 친구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순간, 뭉툭해진 마음이 갈 길을 잃었다. 내가 기억하는 친구는 책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 후, 가족의 생계를 떠안으면서부터 여유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먹고살기 힘들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에는 ‘시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서글픈 진실이 전제된다. 그녀의 말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몇 년 전 겨울, 강원도행 시외버스에 즉흥적으로 몸을 실었던 나도 그녀와 비슷했다. 자유로운 영혼이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니 감당해야 할 일투성이였다. 아이를 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피로에 나를 내어주는 일상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아등바등 일을 놓지 않는 내게 누군가는 욕심이 많다고 했다. 누군가는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고 내 감정과 수고로움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처럼 가볍게 여겼다. 몰이해의 언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억울해지기를 반복하며 그 좋아하던 책과도 멀어졌던 암흑기.
어느 날 책 한 권을 챙겨 시외버스에 짐짝 싣듯 몸을 던져넣고 일탈을 시도했다. 그저 탁 트인 바다라도 눈에 담으면 위안이 될까 싶은 막연함으로 바다로 향했다. 그날 나는 온종일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볼을 에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위안은 커녕 온몸 가득 짠기만 머금고 그나마 있던 체력까지 바닥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허기가 몰려왔다. 죽을 것 같이 힘들 때는 언제고 배고픔을 느낀다는 게 우스웠다. 숙소 앞 편의점에 들러 삶은 달걀과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돌아와 침대에 누워 챙겨온 책을 펼쳤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
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단 두 줄의 짧은 글이 한동안 시선을 붙들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운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그해 협재’란 글이다. 당시 나는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필요가 무엇인지 몰라 감정에 잠식되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인처럼 침묵으로 안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침대 독서등 너머 6인실 여행자 숙소를 돌아봤다. 조용히 책 보는 사람 두어 명이 전부였다. 공용 공간이었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 사부작거리는 움직임 외에 고요함이 가득했다. 낯선 장소가 주는 약간의 긴장감과 누군가와 함께 있는데도 침묵할 수 있다는 평화로움이 한데 섞여 오묘하고 꽤 그럴싸한 안락함을 선사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글도 그렇다. 그것이 시든 소설이든 내 안에 들어와 의미가 된 글은 죽지 않고 생명을 얻는다. 책의 의미와 독서의 힘은 여기에 있다. 바닷가 숙소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은 혼란스러운 나를 다독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위로했다. 그날 독서로부터 얻은 위안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체득시켰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책은 고요히 곁에 머물며 위로하길 멈추지 않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소진되어 가는 느낌이 올라올 때마다 책을 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가족 모두 잠든 후 거실 소파, 동네 무인 카페, 도서관 서가 사이가 모두 나만의 공간이 된다. 예기치 않은 때에도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벗. 책은 내게 든든한 벗이다. 당신에게도 그런 벗이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내 곁에
돌아보니 책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내가 독서의 재미를 처음 느낀 건 초등학교 시절 친척 언니에게 물려받은 빛바래고 낡은, 명탐정 셜록 홈즈 문고판 시리즈 덕분이다. 잦은 야근으로 매일 같이 늦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홈즈 시리즈를 읽었다. 그때 느꼈던 쫀쫀한 감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활자에 흥미를 느낀 뒤라면 다른 분야로 시선을 돌리기는 더 쉽다. 읽기의 재미는 단행본 소설을 지나 고전과 인문서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나의 경우 문고판에서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단행본으로 옮기게 된 건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으면서부터다.
나와 같은 또래 초등학생이 겪는 일제강점기의 실상은 역사를 귀동냥으로 배운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격간살이의 고달픔과 전쟁, 개발의 시대를 거치며 겪는 혼란스러움을 봤고, 그 가운데에서도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갖출 수 있다는 것도 책에 담긴 작가의 시선을 통해 배웠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우리는 타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시대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작중 인물의 삶을 자신의 가치관과 비교하며 사고의 폭을 넓힌다. 이는 나아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방편이 된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삶이자 하나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독서는 나와 나를 연결하고, 나아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길이기도 하다.
고전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던 20대 초반, 분명한 기억으로 남은 한 권의 책이 있다. 당시로는 꽤 발칙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던 정이현 작가의 첫 소설집<낭만적 사랑과 사회>다. 처음으로 전통적인 여성상과 사회 기저에 작동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단편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 허울을 뒤집어쓴 사랑의 허상, 낭만이라 쓰고 욕망이라 읽어야 하는 인간의 이면들에 대해 질문했다. 덕분에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고독한 개별자로서의 삶을 견뎌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 어쩌면 이 책과의 만남이 결혼 이후의 고독을 견디게 해준 토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뻔한 말은 자제하고 싶지만, 독서는 삶의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좀 더 현명한 길로 안내한다는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은 경험과 학습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물이다. 세계관을 확립한다는 건 한 사람으로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난관 앞에서 좀 더 현명한 길을 택할 수 있다. 특히 힘겹고 버거운 절망의 순간, 남 탓에 시간을 버리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힘은 학습과 사유라는 경험을 통해서 갖출 수 있다. 독서는 이를 가장 빨리 이룰 수 있는 길이다. 프랑스 작가이자 애서가, 그리고 독서광이었던 샤를 단치는 <왜 책을 읽는가>에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은 결코 삶과 대립하지 않는다.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은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되 자만하지 않는 삶,
최소한의 긍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
그리고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책은 인생이며,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는 샤를 단치의 말에 동감한다. 책과 독서는 삶이 주는 비참함 마저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밀도의 시간을 허락한다.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독서는 감미로운 몰입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배가 된다. 읽기의 과정은 소란한 환경으로부터 읽는 사람을 고요한 활자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몰입의 시간은 평온하다. 과잉 연결의 시대에 오로지 나와 책의 세계만 존재한다. 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순간, 이기적인 독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무겁고 날 선 일상에 책의 자리를 마련해 지친 마음에 위안을 전하길. 그리하여 행불행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단단함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길 소망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순간조차 공허함에 시달린다면, 함께여도 외롭다면 더 책을 가까이하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과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조우하길 기대한다.
※ 가을,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책 목록
- 산문집: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에세이: 김민섭 <당신은 제법 쓸만한 사람>
- 소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 인문·철학: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 인문·교양: 김지수, 이어령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고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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